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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독서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감염내과 의사가 읽어낸 문학과 역사 속 감염병 및 인간 곤경의 기록
이종화 기자  |  voicepl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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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1  22: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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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가 되겠노라 했던 고등학생은 뜻하지 않게 의사가 되어 참으로 독특한 또 하나의 에세이 유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환자를 보면서 경험했던 일들은 문학 속의 전염병과 얽혀 미지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의학 교과서는 한 줄로 압축해 질병과 인간의 역사를 깊이 있게 살려내지 못하지만, 어느 작가들이 작품에 남겨놓은 한 줄 부스러기의 이야기는 의사들보다 현실감 있게 병과 인간사의 면모를 다뤄내고 있다. _김준명 전 연세대 감염내과 교수

오늘날 의료의 현실만큼 치열한 삶의 전장은 따로 없다.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때로 외면하고 싶은 도저한 폭력과 함께 인간미가 분출하는 그 전장에 종군하며 생로병사의 숭고한 순환과정을 지킨다. 이 책은 삶의 처절한 전장에서 길러진 감각과 안목이 문학 텍스트를 통해 수렴되며 깊어지고 다시 순환하여 삶과 인간의 비의를 어떻게 생성시키는 것인지 보여준다. 문학과 의학, 삶이 서로 만나 부딪치며 약동하는 ‘월풀’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_성석제 소설가

어디서든 풍부한 독서를 바탕에 두고 유머와 재치로 좌중을 휘어잡을 줄 아는 그녀. 이 책은 문학 속에서 감염병을 읽어내는 게 주제이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 살리기를 기록한 의사 분투기이기도 하다. 감염 전문의의 길은 의사의 길 중에서도 ‘좁은 문’에 해당된다. 옴, 메르스, 결핵, 이질, 콜레라, 말라리아, 조류독감 가까이에 있는 그녀의 고단한 싸움은 담담하고 따뜻한 문장에 실려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_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현장 의사가 기록으로 남긴 ‘인간 곤경의 기록’

전염병은 인류 사회에 큰 상처를 입혀왔다. 14세기부터 대유행한 흑사병(페스트)은 유럽 인구의 30~40퍼센트를 잡아먹고서야 진정되었다. 20세기 초엽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불과 2년 만에 전 세계에서 2500~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러니 전쟁보다 무서운 게 전염병이란 말이 나온다. 현대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광경을 미디어를 통해 지켜보며 “언젠가는 저 가축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불과 한 달 전 쿠웨이트를 다녀온 60대 남성이 메르스 양성 반응을 보여 온 미디어가 들썩였다. 병원체를 통제해야 할 관련자들은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괴로웠으리라. 미생물은 과학이 발전한 요즘에도 이렇듯 진화하고 또 진화하여 인간을 위협한다. 아직 그 위협의 정도가 우리가 실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전염병은 문학과 예술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전염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장티푸스(장질부사)는 우리 근대 문학 속 가난한 자들의 삶의 끝자락과 함께하는 질병으로 자주 등장한다. 2000년 『영혼의 산』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젠은 문학이 “인간 곤경의 기록”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인간의 가장 비참한 때와 함께하는 감염병은 인간 곤경의 양상에 대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곤 한다.

『감염된 독서: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아주대병원 최영화 교수가 쓴 독특한 책이다. 에세이면서 서평 모음집이기도 하고 질병, 특히 감염병과 관련된 책만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이색적이다. 저자는 국내 에이즈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잠시 저자에 대해 설명하자면 감염내과 의사로서 사스 의심 환자를 진료했고(2003), 그와 관련하여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아주대 의과대 졸업생들이 선정해서 주는 ‘황금분필상’(2010, 2014)을 받은 성실한 선생이기도 하다. 또한 간이식 환자의 이식 후 균혈증과 관련한 논문으로 대한감염학회 학술상(2013)을 받았으며 2015년 메르스 유행 때 즉각대응팀 일원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주대학교 총장상(2015)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이러한 현장 전문의가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부제 아래 감염병과 관련된 책들을 한자리에 집합시켰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와 급성출혈결막염이 연결되고, 『닥터 지바고』와 발진티푸스가 연결되는 식이다. 『데카메론』은 페스트, 『나는 걷는다』는 아메바 이질, 『이 인간이 정말』과는 O157 대장균으로 이어지는 목록을 보면 감염병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다. 저자는 이 책들에 등장하는 관련 대목을 인용하면서 전문 지식으로 더 풍부하게 그 내용을 풀어낸다.

프리모 레비가 묘사한 ‘음산한 콧소리’

수용소에서 겪은 ‘인간 이하의 일’을 들려주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펴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다. 이 책을 읽은 저자는 고통스러운 삶만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깨달음의 한 구절과 만나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나치에 체포되어 이탈리아에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폐쇄된 기차간에서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구타, 추위, 갈증을 견디며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 것”은 결코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살려는 의지, 그런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사람을 끝도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고 말이다.

수용소에서는 이질, 발진티푸스, 성홍열, 디프테리아, 결핵이 창궐했다.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에 도착하기 직전 성홍열에 걸려 감염병동으로 옮겨졌는데 정신이 돌아오자 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하나둘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는 상태가 좋아 보였지만 하루하루 목소리가 음산한 콧소리로 변해갔다. (…) 점점 더 콧소리가 심해지는 것 외에도 음식물을 전혀 삼키지 못했다. 뭔가 목에 걸린 듯, 약간의 음식만 삼켜도 목이 막히려고 했다. 나는 앞쪽 막사에 환자로 남아 있는 헝가리인 의사를 찾아갔다. 그는 디프테리아라는 말을 듣자 내게서 몇 발짝 물러섰고, 나에게 나가라고 명령했다.”

이 장면이 전형적인 디프테리아 증상이라는 것을 저자는 이론적으로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얀 막이 생기는 인후염으로 목이 심하게 붓고 후두부까지 부어서 콧소리가 나며 목의 림프절이 부어서 황소 목처럼 될 것이고 후두 마비가 와서 삼킬 수 없다가 결국엔 질식해서 숨지는 경과입니다. 독소 때문이지요”라고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도 직접 디프테리아를 경험해보진 못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질병인 탓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기록으로는 보고된 것만 해도 1960년대엔 한 해 1000건 정도였고 1970년대엔 수백 건이었다가 급감하여 1985년에 2건이 보고된 이후로는 사례가 없다. 예방접종이 1950년대 말부터 도입된 덕분이다. 1977년 11월 8일자 『매일경제』에는 디프테리아 주의보에 대한 기사도 있다. “보사부는 8일 최근 환절기를 맞아 1종 전염병인 디프테리아가 크게 번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 전국에 디프테리아주의보를 내리고 특히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디프테리아 예방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전염병은 무엇일까

시리즈 전체가 천만 부 넘게 팔렸다는 이문열의 『삼국지』는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읽은 책 중 하나다. 다들 책에 등장하는 영웅적인 인물의 일화나 전쟁 속의 전략과 모략에 열광하지만 『삼국지』에도 전염병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적벽대전이 벌어졌을 때 조조의 근대는 손권과 유비의 군대를 만나 대패한다. 승패를 가른 것은 제갈량의 전략이 전부가 아니다. 당시 조조의 군대는 소화불량과 악성독감에 시달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행군을 오래 했고, 식사도 불규칙했으며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조조를 이긴 유비는 221년 4월 제위에 오르지만 이듬해 6월에 이질에 걸려 죽는다. 세균성 이질인지 아메바성 이질인지는 사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아메바성 이질의 격렬한 모습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퇴직하고 60세가 된 프랑스인 올리비에는 1년에 6개월씩 4년 동안 1만2000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계획을 세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란의 테헤란을 거쳐 실크로드가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통과하고 중국 시안까지 가는 여정이다. 그의 여행을 중단시킨 건 고된 일정도, 식량 부족도, 마적 떼도 아니었다. 아메바성 이질이었다. 설사로 시작된 증상은 이내 격렬해져서, 구토와 갈증 설사를 반복했다. 뱃속에서 아메바가 들끓고, 토하고 피와 점액을 배설하며 그는 사흘도 안 돼 몸무게가 11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비행기에 실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이질을 치료한 뒤 다시 길을 나서서 원래의 목표를 이뤘으며 그 과정은 『나는 걷는다』라는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진시황의 목숨을 앗아간 ‘결핵성 수막염’

진시황은 순행 중에 죽었다. 과연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궈모뤄의 『역사소품』에 「시황제의 임종」이라는 글이 있다. “머리의 아픔은 점점 심해져갔다. 구토하는 횟수도 점점 많아졌다. 열 또한 점점 높아져갔다. (…) 목도 점점 굳어져갔다. 이빨만 계속해서 갈고 있었다. 양 무릎은 구부러져서 곧장 펼 수가 없었다. 그는 조용히 늘어져 있을 때가 많았으나 별안간 헛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역사학자 궈모뤄는 26세에 일본 규슈 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는 사료에 바탕해 상상력을 덧붙임으로써 이런 글을 써낼 수 있었다고 저자는 본다. 위의 증상은 전형적인 ‘결핵성 수막염’ 증상이다. 저자는 말한다. “결핵성 수막염은 어려운 병입니다. 결핵균이 척수액 검사에서 금세 확인되는 것은 드물며 배양에서 나오는 데는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척수액 소견과 여러 정황을 살펴 감을 잡아야 합니다. 좀더 신식 검사법이 있긴 하지만 시원스레 예, 아니오를 대답해주진 못하지요. 결핵약을 쓴다고 그 순간부터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열이 오래가고 후유증도 남습니다. 사망률은 ‘모두 사망’에서 이제는 ‘20퍼센트 이하’로 감소했지만 신경학적 후유증이 적게는 10퍼센트, 많게는 80퍼센트까지 남습니다. 시황제 이후로 2000년도 더 지난 오늘이지만 신경과 의사는 때로 저를 붙잡고 이런 환자를 어찌할까 같이 고민하자고 괴롭히는 병입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잔잔한 문체로 인해 여백이 느껴질 정도이지만 글을 쓴 지난 5년간 저자는 한가롭고 여유롭지 못한 처지였다. 오히려 병원 일과 환자를 보는 일과 요구받는 일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절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어깨에 지워진 본연의 업무를 달리 누구로 대체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견뎠고 세월이 흘러갔다. 꾹꾹 견디기만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저자는 죽어가는 화분을 살리거나, 책에서 자신과 같은 의사 혹은 감염병을 찾아내거나, 글로 신세 한탄을 하는 데서 탈출구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 또한 ‘인간 곤경의 기록’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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