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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중 교수가 소개하는 '아버지와 나'아버지를 생각하게 하는 나만의 영화들
이종화 기자  |  voiceplus@healthda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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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30  10: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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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한양대학교의료원 [사랑의 실천]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 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보였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수줍게 웃던 선한 눈매로 소주라도 한 잔 걸쳐야만 철 지난 유행가를 읊조리던, 은하수 담배와 스파이스 향수가 뒤섞인 뭉툭한 손가락에서 평생 결혼반지를 벗지 않았던 그가 떠났다.

그가 들려주었던 많은 이야기들은 이제 그의 손자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나는 있을 법한 데자뷰에 의지하여 그가 걸었던 그리고 걸었을 길을 가고 있다.

누구 아들에서 누구 아버지 호칭이 더 편해질 무렵, 부자지간에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어머니 혹은 마누라란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는 남자들의 무언의 의식이다.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알아차리는 맨 살의 부딪힘은 강력한 모성애가 미처 차지하지 못한 틈새를 슬그머니 파고들어, 어깨 쳐진 불쌍한 이 땅의 아버지들을 그나마 미소 짓게 만드는, 작지만 믿음직한 평생연금
이리라.

셰인(1953)은 표면적으로는 악당에 대적하는 떠돌이 총잡이를 다룬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서부영화 버전이지만, 가족의 안위 때문에 아빠가 보여주지 못했던 카우보이 셰인의 남자다움에 매료된 아들 죠이의 짧은 성장통이기도 하다.

실질적인 아버지의 부존을 권총으로 메우려 했던 외부인은 자기로 인해 가족관계에 금이 갈 것을 예감하고는 돌아오라는 죠이의 메아리를 뒤로한 채 홀연히 마을을 뜬다.

오디세우스가 전쟁터에 나간 10여 년 동안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처럼, 선생님처럼, 아버지
처럼 항상 곁에서 돌보아주었던 친구 멘토.

여인의 향기(1992)에서 퇴학 위기에 빠진 고교생 찰리를 위해 재단이사들 앞에서 남자다움과 우
정, 정의를 설파했던 맹인 퇴역군인 프랭크야 말로 심약한 아버지를 대신한 진정한 멘토일 것이다.

챔프(1979)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는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편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아들을 엄마에게 돌아가게 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심한 말을 내뱉고는 울부짖는 은퇴한 복서 존 보이트와 갑자기 집을 뛰쳐나간 부인 때문에 가정일을 돌보느라 회사에서 해고되어 결국 양육권까지 빼앗기게 된 더스틴 호프만.

가정의 해체로 인해 충돌하는 모성애와 부성애, 그 안에서 방황하는 자식을 위한 현실적이지만 낙관적이지 않은 결말이 제시된다.

양육권에 대한 냉철한 법적 잣대는 아이 엠 샘(2001)에서 관객을 심리적 공황으로 내몬다.

7살 아이 지능의 숀 펜이 보여 준 연기는 왜 그가 악동임에도 불구하고 메소드 연기의 구루로 인정 받
는지 보여준다.

비틀스의 음악에 실린 아역 다코타 패닝과 조연들의 감동적인 연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도 눈물을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5분간의 암전이 더 필요했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미국의 중산층 가장 케빈 스페이시는 실상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가득 찬 숨막히는 생활을 하던 중 딸의 친구 메나 수바리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성적환상과 일탈을 꿈꾸며 활기차게 변화한다.

외도를 들킨 아내를 의식하지 않고 애착이 없던 자식을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진정한 자유와 아버지상을 찾아가던 중 옆집 퇴역군인의 총에 사라지게 된다.

아메리칸 뷰티(1999)는 일상의 평온함에 숨겨졌던 위선의 꺼풀 속에서 자리를 잃고 온 가족으로부터 존재감이 없어져버린 아버지의 파국을 건조하게 드러낸다.

영국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와 빌리 엘리어트(2000)는 모두 아버지와 아들의 오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화해와 개인적인 성숙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무고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들은 아버지의 임종에 다다라서야 실은 그가 강한 내
면을 가졌던 위대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무죄판결을 이끌어 낸다.

발레를 하는 아들을 백안시하던 권투선수 출신 아버지는 아들의 춤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
혀 아들을 탄광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돈을 모으게 된다.

가족(2004)에서 주현이 보여준, 깊은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우리네 아버지와 많은 부분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 앞에서 죽어가던 트로츠키가 했던 말은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였다.

제2차 대전으로 수용소에 갇히게 된 유태인 로베르토 베니니는 아들 조슈아가 비극적인 현실을 맞닥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죽음의 순간까지도 게임으로 치장하고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설명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그럼으로써 아버지
란 이름의 위대함을 가슴이 터지도록 생생하게 느끼고 죽음을 뛰어 넘은 부성애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희구하게 만든다.

글: 이형중 한양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

자료출처 : 한양대학교의료원 [사랑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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